선택지는 처음부터 한일이었습니다. 무려 10년 이상을 사용했습니다. 집에 사람이 있을때는 거의 24시간을 날개는 돌았습니다. 그런 가혹한 환경에서 10년 이상이라니. 한일이라는 브랜드에 신뢰를 넘어 애정까지 생겼습니다. 선풍기 청소를 하려고 보니 변색은 물론이고 모터가 있을 뒷부분 플라스틱이 삭아서 떨어지고 있더군요. 어느새 부턴가 회전이 안됐습니다. 리모컨은 분실해서 어디로 사라진지 몇 년째고요. 문득 선풍기를 바꿔야 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쿠팡에 주문했습니다. 그리고는 선풍기 청소를 시작 했습니다. 앞망을 떼서 물에 씻고 날개도 깨끗이 닦았습니다. 뒷망 사이도 시간을 들여서 일일이 닦았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청소를 잘 안하는 편이라 사실 막 썼다고 하는게 맞을 겁니다. 혹사죠.
깨끗이 청소했습니다. 새 제품은 토요일 오전에 주문하니 월요일에 온다고 합니다. 앞으로 길어봐야 2~3일이라고 생각하니 괜히 울적해집디다. 10년 이상 같은 공간에 있던, 기계에 불과한 선풍기지만... 떼어냈던 앞망을 부착하고 전원을 눌렀습니다. 알고 있었던 걸까요? 그동안 억지로 버텨줬던 걸까요? 할 일을 다했다고,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안심하고 가도 된다고 생각했던 걸까요? 20분전까지, 소리는 좀 났지만 꿋꿋하게 돌아 가주던 날개가 회전을 멈췄습니다. 최근 들어 가장 깨끗해진 상태로 말입니다. 깨끗한 몸체로 가고 싶었던 걸까요?
사람의 한 세대가 30년이라면 기계인 선풍기의 한 세대는 몇 년이나 될까요? 매해 신제품이 나오니 1년이 한 세대라고 봐야 할까요? 그렇다면 아들, 손자, 증손자, 고손자뻘도 넘는 후손에게 소임(?)을 물려 준 걸까요?
쿠팡은 빠르더군요. 월요일에 온다는 배달이 일요일에 왔습니다. 조립을 마치고 전원을 넣으니 부드러운 바람이 나옵니다. 소음도 거의 없네요. 하지만 시선이 자꾸 다용도실로 갑니다. 화요일에 버리려고 넣어 두었거든요. 미안해집니다. 배신하는 사람들 마음이 이럴까요?
한일 여러분. 지난 10년(사실 최소 13년은 넘은 것 같습니다) 고마웠습니다. 앞으로 10년도 매년 여름이면 영문으로 적힌 로고를 보겠네요. 잘 쓰겠습니다. 앞으로도 한일만 살 겁니다. 고맙습니다.